강은 자연풍광이 아름답다는 개념을 뛰어넘어 생태와 문화, 사람살이 등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물길의 주인이기도 한 민물고기들의 생태가 불가능해진다면 강의 생명도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호강에 미호종개가 사라졌다는 것은 미호강의 물길이 더 이상 생명수의 기능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실제 존재하고 있는 미호강의 민물고기와 ‘미호종개’이야기를 동화라는 문학 형식을 통해 강물의 생태계를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더 많은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졸작으로 허난설헌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역사책에서 ‘천재시인 허난설헌’이라는 문구를 보았을 뿐, 허초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허초희와 관련된 책 몇 권에서 아버지 허엽과 오라버니 봉, 동생 균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무엇보다 균과 초희의 스승인 손곡 이달이 마음을 끌었다. 손곡은 당대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알려졌으나, 서얼이라는 이유로 자리에 쓰이지 않아 역사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허균은 누이 초희와 손곡의 사후에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두 사람이 남긴 시를 모아 《난설헌집》과 《손곡집》으로 묶어주었다. 시집 서문에는 좋은 시가 세상에서 알려지지 않고 묻히는 것이 아까워 두 사람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펴낸다고 썼다. 두 사람의 시는 허균이 아니었다면 세상에서 만나 보지 못할 뻔했다.
허봉과 초희, 균은 ‘이상국(理想國) 건설’이라는 같은 꿈을 꾸었다. 그들에게 이상국은 양천(良賤)과 같은 엄격한 신분제도와 남녀차별 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공정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유교를 근본이념으로 세운 조선에서 이들 가족의 생각은 이단(異端)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권력과 신분이 보장된 권문세족(權門勢族)이면서 차별받는 계층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했다. 온 몸을 던져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들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손곡 이달의 영향이 컸다 할 수 있으나 그들 자체가 마음의 문을 열어놓지 않았다면, 손곡의 가르침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당신들의 삶이 늘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2008년 겨울 테리와 함께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나게 됐다. 3년 정도를 계획한 여행이어서, 배낭에 뭔가 특별한 것을 담아가야 할 것 같았다. 손곡과 허씨 일가를 이해하기 위해 장만했던 책 몇 권을 넣었다.
인도 카페에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16세기 조선을 기웃거렸다. 우리가 가야 할 다음의 길보다 초희와 손곡, 봉과 균의 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고 자책하면서. 왜 그랬을까?
당신들의 열정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당신들의 이상은 매력적이었다. 당신들의 감성은 따뜻했다. 당신들 사제지간의 의리가 부러웠다. 당신들에게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당신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설레었다. 그 밖의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16세기 조선에서 당신들과 함께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써내려갔다. 길 위에서의 소설 작업은 얼개가 촘촘하게 짜지지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낭만이 앞섰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 시절 인도의 낯선 거리, 낯선 카페에서, 낭만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그나마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부용꽃붉은시절》로 내놓기까지 10년을 묵혔다. 10년을 만지작거리며 이 기간이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자칫 철 지난 옷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공교롭게도 코로나 19 시대에 당신들의 삶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허봉 초희 균 손곡이라는, 당대의 나(我)를 뛰어넘어 모두 함께 잘 살고자 했던 당신들의 삶을 소환하는 일은 필연이다. 당신들의 이야기는 400년을 건너뛴 것이 아니라, 400년 동안 생생하게 살아 지금에 다다랐다.
길 위에서 나보다 훨씬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늘 곁을 지켜준 딸 테리에게, 16세기에 머물지 않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바친다. 테리가, 그리고 이 땅의 다른 테리들이 당신들의 삶을 엿보고 내가 설레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세상 무엇보다,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하므로.
글이 마무리되기까지 정종진 선생님과 김주희 선배님의 따뜻한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이 밖에 책 발간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2020년 10월
강은 자연풍광이 아름답다는 개념을 뛰어넘어 생태와 문화, 사람살이 등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물길의 주인이기도 한 민물고기들의 생태가 불가능해진다면 강의 생명도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호강에 미호종개가 사라졌다는 것은 미호강의 물길이 더 이상 생명수의 기능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실제 존재하고 있는 미호강의 민물고기와 ‘미호종개’이야기를 동화라는 문학 형식을 통해 강물의 생태계를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더 많은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집필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