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는 자신이 탈영을 했는지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왔는지 잘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시작부터 의도적으로 얄팍하고 추상적인 이야기 주제를 제시한 것이다. 나는 리얼리즘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전적인 허구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단 하나 흥미가 있다면 그것은 이 소설을 읽는 독자의 머릿속에 어떤 반향이(비록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것이다. 추리소설 애독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유형의 현상 말이다. 엄격히 말하면 이 소설은 유희소설 또는 퍼즐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그런 것이다.
나의 처녀작이 처음으로, 김만중과 이해조를 배출한 나라에서, 매우 시적이고 생동감 있는 한국어로 출간된다는 것은 저에게는 참으로 큰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그 번역이 내가 니스에서 만났고, 그녀의 친절함과 섬세함과 그리고 우아함이 내가 속해 있는 해묵은 지중해 세계에서 한국문화가 어떤 것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 정혜숙 씨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곧 만날 수 있기 바랍니다.
이 책은 어떤 뿌리찾기 여행에 관한 보고서이다. 함께 책을 써보자던 막연한 생각이 본격적인 구상으로 발전했을 때, 우리는 그 책이 제미아 가족의 시원(始原)인 사기아 엘 함라 골짜기, 곧 '붉은 강'으로 돌아가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제미아는 자기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이 함라니야, 곧 '붉은 살갗'이라는 말을 곧잘 했다. 그 말에는 자신이 사하라 민족의 일원이라는 뜻과 자신의 살빛이 붉다는 뜻이 아울러 담겨 있었다.
시원의 땅으로 되돌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곳이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고 수년간의 전쟁 때문에 되부 세계와 차단된 머나먼 땅이라면, 그리고 거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폭풍우와도 같은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 청년기의 영혼을 표출시키고, 그 또래 젊은이들에게 요구되는 ‘성인으로서의 변신’을 준비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을 사십 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동시대의 사건으로 읽는 것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21세기의 니스와 서울, 파리는 여전히 모순과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보호막 역할을 해줄 흉벽조차 없이 현실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