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한 여자중학교에 미술 교사로 있을 때였습니다. 한 학생이 스케치북에 별 하나를 덩그러니 그려 놓았는데, 젖소 무늬를 연상시키는 얼룩 별이었습니다.
“참 별난 별이구나? 무슨 의미가 있는 거니?”
“아무 뜻도 없어요. 그냥 그 별의 특징이에요.”
아이는 툭 대답하고는 별 실없는 질문을 다 한다는 듯 계속 그림에 열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비 오는 아침, 창밖으로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노란 우산》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뒤 이성적 경험에 의한 문학적 의미 또는 문학적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들을 물을 증류하듯 의도적으로 제거해 가면서, 오직 투명한 시각적 이미지 자체만을 표현하는 데 나름대로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노란 우산》에 담고자 한 것은 예술의 내재적 가치를 정점으로 하는 그림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며, 어린 영혼들이 지닌 빛나는 색이 이리저리 뒤섞이며 순간순간 다채롭게 그려 내는 조화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노란 우산》이 세상에 나온 뒤 쓸데없이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많은 어른들이 의문스럽게 물어 올 때마다 나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무 뜻도 없어요. 그냥 색들의 즐거운 리듬을 표현한 것이고, 그것이 이 그림책의 특징이에요.”
오래전 사할린 섬 남쪽 끝에 있는 코르사코프라는 곳에 갔을 때였다. 바닷가 작은 언덕, 나무 한 그루 없이 듬성듬성 나 있는 풀섶 위에 남루한 나무 벤치 하나가 놓여 있고, 동포 노인 한분이 앉아 고국을 향해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듯 기묘했다. '저렇게 반세기를 앉아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슬그머니 다가가 그 분의 표정을 보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 그저 멍해졌다. 상상과는 정반대로 그렇게 온화한 모습일 수가 없었다. 무엇이 그 분을 미소 짓게 했을까?
돌아온 나는 참담했고 한동안 자괴감에 빠졌다. 무엇인가 구하러 간 그곳에서 목격했던 상황들은 되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어떤 곳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