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의 제목이 "세계를 놀이터 삼아"인데 세계가 놀이터라니, 여행기냐고 묻는 이가 있었습니다. 튀기 엄마로서 튀는 페미니스트가 왜 타이틀은 튀는 것을 안하냐고, 책 타이틀이 너무 심심해서 책이 안팔릴 것
같다고 걱정하는 분도 있었구요.
요새는 '--해라' '--하지마라' 식의 말이 잘 먹혀 들어간다며 좀더 강한 타이틀을 정하라는 권고도 있었습니다. (그런 타이틀 보면 전 무서워요. 유신정권과 80년대에 명령형 '만' 듣고 자란 사람으로서 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명령형의 문장이 범람하는가, 우리의 의식이 암암리에 지배받기를 원하는 게 아닌가 안타깝습니다.) 노는 여자를 무서워하거나 경멸하는 사회에서 "놀이터"란 개념과 제가 페미니스트란 사실이 혼합되어 "끝내주게 놀아난 여자"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여질 것 같다고 우려한 분도 계셨습니다.
저는 '놀이터'를 '배움터'의 의미로 쓴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보니까 놀면서 엄청 많이 배우더군요. 어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요. 세계를 놀이터 삼았다니까 거창하게 들리는 게 껄끄럽지만, 실제로 제가 공부하면서보다는 놀고 여행하고 사람 만나면서 배운 게 정말 많았거든요.
저는 페미니스트로서 저의 첫 책을 저에게 영감과 영향을 주었던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송가로서 쓰고 싶었습니다. 사실 요 근래에 성공한 여성들--우뚝, 홀로 서 있는--의 엣세이들을 많이 접하면서 여성과 여성의 연대, 자매애의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이 제가 글을 쓰게 된 동기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여성에 대해 쓰다보니 저절로 제 얘기가 나오게 되더군요. 유학생, 노처녀, 페미니즘, 국제 결혼, 튀기 엄마, 그리고 페미니스트 전업주부 (홈메이커)가 되기까지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썼습니다. 글 쓰는 내내 제 자랑하는 듯한 이야기가 될까봐 조심하게 되더군요. 현모양처가 되라고 부추키는 글이라 오해를 받을까 걱정도 들었고요.
제 책에서 저는 80년대부터 계속 지고 다닌 고민--성, 사랑, 성공--의 문제도 짚어보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저는 제가 20대의 젊은이로서 읽고 싶었던 책을 쓰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글 쓰는 내내 참 행복했습니다. 정신분열증 초기라고나 할까요? 40대의 작가로서 글을 쓰면서 20대의 여성의 마음으로 제 글을 읽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다른 이들의 책을 읽으면서 "말도 안돼!" "정말" "글쎄. 생각해볼 부분이네" "웃긴다" "꽉 막혔네" 꼼꼼히 평을 하면서 읽듯이 독자가 제 책을 읽어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그래서 독자께서 앞으로 여러 선택을 내릴 때 좋은 선택(행복에 다다를 수 있는 그런 선택)을 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2002년 3월 7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