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이 한층 격렬해지던 1944년 말, 쿠릴 열도에 있는 우루푸섬(이 책에서는 치로누푸 : 일본 아이누 말로 ‘여우’라는 뜻)에 상륙했습니다. 섬에는 정말 많은 여우가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상륙했을 때, 오두막에서 산을 지키며 살던 초로의 부부는 “아무쪼록 여우를 잘 부탁해요.”라는 말을 남기고 일본 본토로 돌아갔습니다.
봄이 되어 봄맞이꽃이 필 무렵, 섬 여기저기에서 밀렵꾼들이 설치해 놓은 덫을 발견했습니다. 덫 하나에 아기 여우의 뼈가 하얗게 남아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쥐와 새의 뼈로 보이는 작은 뼈들도 수없이
널려 있었습니다. 가까운 언덕에 덩그러니 서 있는 자그마한 지장보살의 석상 하나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내 가슴에 한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때 기억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 속 앙금이 <치로누푸 섬의 여우>란 이야기를 쓰게 했습니다. 최근 들어 전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환경 문제가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황폐해진 자연을 되살리고, 멸종 위기를 맞은 동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어린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우 가족의 가슴 아픈 애정뿐만 아니라 보다 깊고 큰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글쓴이로서 더 없는 기쁨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