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해양대학에 교수로 근무하기 시작한 1999년 교수들이 문학동인지인 〈나루터〉를 창간하였다. 나도 동료들의 권유에 따라서 〈나루터〉 동인으로 합류하였다. 1년에 한 번씩 〈나루터〉 수필집을 발간하였는데, 한 사람당 2~3편의 글을 내도록 배당을 받았을 때에는 참 답답하였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제출하였다. 몇 번을 이렇게 떠밀려서 쓰게 되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는 미리 미리 생각날 때 수필을 준비하는 요령이 몸에 붙기 시작하였다.
목포해양대학교 연구실에서 고개를 들면 지척 간에 바로 바다와 섬이 보인다. 그리고 가끔씩 안개도 끼어서 운치를 더하였다. 새벽에 출근하여 아침운동을 위하여 유달산 중턱으로 올라가 고하도와 그 넘어 섬과 산들을 바라보면 ‘재미있는 경험’들이 떠오르곤 했다. 이것을 글로 남겨두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생각날 때마다 1년에 3~4편의 글을 적어두는 습관이 나에게 붙게 되었고 이러한 습관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목포해양대학을 떠난 다음에도 고향 영덕 선배님들이 2009년에 《토벽》이라는 동인지를 복간한다고 하여 나를 토벽동인으로 초대하여 주셨다. 그래서 평시에 수필을 적어두는 연례행사를 이어가게 되었는데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나의 수필의 소재는 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동해안 바닷가 어촌의 대가족제 하에서 자라면서 어른들로부터 배우고 체험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선의 선장으로 근무하면서 해난사고를 당한 다음 어려움을 딛고 법학으로 진로를 변경하면서 해상법 교수로 성장한 과정에서 체험한 것들이다.
수필집을 내라는 권유를 주위에서 받았지만, 많이 망설였다. 수필을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공부한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 수필집이라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지만 내가 경험에 바탕한 수필들이 고향의 자라나는 후배나 그 부모님은 물론 실패로 실의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줄 수 있고, 또한 1960년대와 7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동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면 글 쓰는 사람으로서 보람이 되겠다는 생각에서 출간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제 이렇게 나의 수필 48편은 하나의 책으로 묶여지게 되었다. 제1부는 유년시절의 추억을 담았다. 제2부는 가족이나 고향의 가치, 그리고 교훈을 적은 수필을 모았다. 제3부에서는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경험한 실패와 실패를 딛고 일어난 과정 그리고 성공에 필요한 내용들을 적었다. 제4부는 교수생활 20년 동안 교직에서 경험한 내용을 모았다. 제5부는 위 4가지 분류에 속하지 않거나 공통되는 내용을 한 곳에 모았다. 살아가는 평범한 이야기라는 소제목을 달아보았다.
나는 등단을 한 적도 없고 더구나 수필작가도 아니고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작가로서의 현란한 글 솜씨가 있거나 문학성을 갖춘 깊이 있는 내용은 없어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다만, 글의 소재가 되었던 것은 모두 체험한 것으로 솔직하게 가감없이 적어나간 것임을 밝힌다. 독자들께서 나의 글에서 가끔은 용기도 얻고, 교훈으로 삼아 자식교육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옛 추억에 잠기면서 힐링의 시간을 가지시게 된다면 나로서는 큰 보람이고 영광이 될 것이다.
- 2017년 겨울 화정동 서재에서
목포해양대학교에 부임하자 선배교수들이 ‘나루터’라는 동인지에 수필 3편을 내라고 했다. 정말 멘붕상태였다. 글이라는 것이 1주일 사이에 막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해마다 11월에 돌아오는 수필을 적어내는 것이 고역이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하는데, 재미있는 스토리가 생각났다. 막 적어서 저장해두었다. 아, 이렇게 생각이 날 때 적어두면 되는 것이구나! 이렇게 하여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틈틈이 소재가 떠오르면 글을 적어둔다. 글에 자신이 붙자, 고향의 영덕신문에 어릴 적 추억을 글로 남겼다.
2009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교수로 초빙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 면단위 고등학교 출신에 지방대인 한국해양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고려대 법대 교수가 된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난파선 선장에서 위기탈출을 한 것도 실패를 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1992년 있었던 산코 하베스트호 좌초사고를 중심으로 내가 어떻게 위기에서 탈출하고 오늘에 이르렀는지 수필의 형식으로 글을 남겼다. 책은 대성공이었다.
이를 읽은 어떤 지인이 동아일보의 칼럼담당자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는 “재미있으면서도 지식을 전달하는 칼럼이 필요하다. 선장님은 재미있는 경험이 많으실 거 같다”고 하면서 몇 편의 글을 보내보라고 했다. 나는 주말에 20편의 글을 초안을 잡아서 그에게 보냈다. 1주일 후 나는 고정칼럼을 갖는 교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20회로 마칠 예정이었지만 동아일보에서 마음에 들었는지 벌써 85회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교훈이 된다면서 나를 격려했다. 책으로 펴내라는 요구가 많았다. 50호까지 엮어서 단행본으로 내기로 했다. - 머리말
2009년 고려대학교에 상법교수로 부임했다. 전공이 해상법이라서 자연스럽게 조선업과 선박금융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불모지대였다. 영국, 홍콩, 혹은 싱가포르에서 영국계 변호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이들 분야의 법률문제를 처리했다. 나는 대학원에 과목을 개설하여 공부하기로 했다. 수업을 마친 다음 연구회를 결성했다. 2011년 1월 첫 연구회를 열었다. 어언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연구회는 2022. 11. 8. 제48회 연구회를 부산에서 가졌다. 연평균 4회씩의 연구회를 연 셈이다.
그냥 발표자를 구하고 강의만 듣고 만다면 지식이 축적되지 않는다. 나는 이를 책자로 만들기로 했고 20회까지를 모아서 “선박건조․금융법 연구 Ⅰ”을 발간했다. 그리고 5년 정도 세월이 흘렀다. 다시 제2권의 발간을 시도했다. 발표자들은 5년도 더 지난 파일을 찾아서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선박금융, 조선 그리고 중간허리 역할을 하는 선주업, 이렇게 세 분야로 나누어서 논문 16편을 편집했다. 필자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누가 봐도 선박금융과 조선업 법률 정책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제1권과 비교를 해보니 제2권은 제1권에 비하여 내용과 질에서 크게 향상되었다. 우리나라 선박건조․금융법 정책분야의 준도 그만큼 향상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책임자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 머리말
두 번째 산문집을 내게 되었다. 첫 번째 수필집 《바다와 나》가 2017년 12월에 발간되었으니 약 2년 반 만에 다시 두 번째 수필집이 나오는 셈이다.
나는 수필가도 아니고 더구나 등단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글쓰기를 좋아하고, 내가 경험한 바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좋아할 따름이다. 그래서 자꾸 생각하는 것을 글로 표현하고 이를 여기저기 공유하길 좋아한다. 문득 다시 수필집으로 내면 더 체계적으로 나의 글이 공유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범우사의 도움을 받아 제2집을 내게 된 것이다.
나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도 강하다. 지나친 고향사랑인지 모른다. 2009년 고려대학교의 교수로 되고 나서는 나의 고향사랑은 더 깊어졌다. 사람들은 시골에서 고등학교 나온 사람임을 감안하면 참 잘되었다는 표현을 하면서 칭찬해주었다. 고향사람들은 어떤 모임이든 내가 자리하면 반겨해 주었다.
나는 동창회나 각종 단체의 자문교수도 맡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나는 고향발전을 위해 무언가 기여를 해야 할 터인데 하는 일종의 의무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40년 전의 아름다웠던 고향이 자리한다. 그런데 현실의 고향은 급격한 인구감소에 군의 소멸을 걱정하는 단계까지 왔다. 나라는 개인이 고향발전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언가? 고향신문에 수필과 칼럼을 생각없이 그저 적어왔다. 어느 순간 나에게 고향은 무엇인가? 고향이 나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드물게 명문대학의 교수가 되었는데 그 비결은 무언가? 이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나라는 사람이 천재도 아닌데, 자라면서 남들과 다른 특별한 무엇이 있었기에 나이가 들수록 힘을 발휘하는 것인가?
세간의 평가처럼 내가 성공했다고 본다면, 그 성공의 비결은 고향 영덕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집안의 가정교육에 있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고향 영덕은 소안동이라 불릴 정도로 유학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오랜 유교적인 전통에서 자란 우리들은 비록 대학진학을 위한 학력은 부족해서 일류 대학에 진학을 못했을지 몰라도, 인간의 기본이 되는 가정교육은 모두 잘 받았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한 우물을 파니까 결국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미치면서 그동안 적은 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한 아름다운 영덕의 자연환경과 가정교육을 한 권의 수필집에 담기로 했다. 나의 경험들이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고향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글을 적을 때는 이런 목적을 가지고 적은 것은 아니다. 길을 가다가, 산보를 하다가, 그냥 수시로 때때로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글을 적었다. 그냥 글을 적어두었다. 특히 2019년 9월부터 6개월 일본 도쿄대학에 있으면서 그야말로 아무런 제약없이 자유로이 연구하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20여 편의 수필이 작성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생생하게 40년, 50년 전의 이벤트들이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이런 기억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이렇게 글로 남겨둘 수 있다는 것은 나의 행복이었고, 스스로 크게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는 일이기도 했다.
영덕 사람들이라는 밴드에 〈김인현의 고향사랑 이야기〉로 25회까지 올렸다. 고향신문에 또 10회 정도 실어서 반응을 보기도 했다. 몇 명의 지인들이 항상 이 글들을 미리 읽어보고 수정해주었다.
처음에는 〈고향 영덕사랑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좀 더 일반화시키자는 범우사 김영석 편집장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영덕에 관련된 것은 뒤로 한 장으로 축소했다. 또한 너무 개인적인 내용은 삭제하거나 부록으로 하여 객관성을 더 살리려고 했다.
본서는 모두 5장으로 나누어진다. 제1장 ‘그리운 고향’에는 고향관련 나의 체험 14편을 실었다. 제2장 ‘바다와 나’에서는 수필 《바다와 나》와 연결을 시킬 수 있도록 나의 바다관련 체험 13편을 실었다. 제3장 ‘살아가는 평범한 이야기’에는 고향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주변 일상생활의 이야기 12편을 넣었다. 제4장 ‘지속가능한 영덕’에서는 영덕의 자랑이나 장점을 위주로 9편을 배치했다. 마지막 부록에는 서평, 영화감상문, 강연문, 개인적인 내용을 넣어보았다. 이렇게 해서 모두 48편의 글이 본문에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책 감상평, 조금은 개인적이지만 공적의미를 담은 11편의 글을 부록에 추가했다. 수필집에 어떤 제목을 정할 것인지 고민했다. 《선장 교수의 고향사랑》이라는 제목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수필이란 자기의 경험한 바를 진솔하게 적는 것이고 여기에 교훈적인 내용이 담긴다면 더 좋다는 것이다. 나의 글은 화려함이 없다. 그저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대로를 적었을 뿐이다.
본서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큰 독자층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와 지역적으로 같은 삶을 살아온 영덕이나 청송, 영양, 울진, 포항 등의 분들은 크게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동향이 아니어도 50대나 60대는 비슷한 삶을 살았으니 과거의 추억을 반추하면서 빙긋이 웃을 대목도 제법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직업을 가진 분들도 공감하는 내용이 꽤 있다고 본다.
본 수필집이 수필로서의 고유한 기능을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본 수필에 나타난 우리 집안에서 행해졌던 가정교육들이 오늘의 각 가정에도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후배세대들이 훌륭하게 잘 자라도록 하는 데에도 이 수필집이 일조를 했으면 한다.
서평을 적어주신 한영탁 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한 편 한 편 수필마다 읽어주고 의견을 보내준 박순애 고모님, 백지수 제자에게도 노고에 감사드린다. 두 번째 수필집의 출간을 기꺼이 허락하여 주신 범우사 윤형두 회장님, 윤재민 대표님, 김영석 편집장님께도 감사드린다.
- 2020년 3월 4일 화정동 서재에서 - 책을 내면서
머리말
2019년 9월에서 2020년 2월까지 일본 동경대학에서 안식학기를 보냈다. 서점을 자주 찾았다. 해운, 물류, 조선 관련 얇은 단행본들이 꾸준하게 발간되는 것을 목도했다. 해사도서관에도 20종 가까운 저널이 발행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일본에서 6개월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김인현 교수의 해운산업 깊이읽기」라는 제목을 가진 200페이지 분량의 책을 내었다.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고무된 나는 1999년 교수가 된 이후로 작성한 칼럼을 모아서 『선장 김인현 교수의 해운산업 깊이읽기 Ⅱ」라는 이름으로 제2권을 발간했다. 380페이지로 약간 두툼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다.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사태 하에 있었지만, 나는 바다, 저자전문가와의 대화를 주도하면서 바다관련 산업의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칼럼을 적었다. 칼럼은 해운, 물류, 조선, 인문학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있다. 어느날 문득 이제 3권을 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운이 전례가 없는 호경기이지만, 불안한 상태이다. 해운과 조선은 경기를 타는 산업이라 안정된 장치를 가지는 것이 급선무라는 관점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렇게 하여 그간 발표된 칼럼과 짧은 논문등 총 70여편의 글이 모였다. 『선장 김인현 교수의 해운산업 깊이읽기 Ⅲ』이 탄생하게 된다. 동아일보에 기고한 “김인현의 바다, 배, 그리고 별”은 다른 단행본으로 낼 생각이다.
이 책이 자매서인 『김인현 교수의 해운산업 깊이읽기』, 『선장 김인현 교수의 해운산업 깊이읽기 Ⅱ』와 함께 널리 읽혀서 우리나라 해운조선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