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대는 그를 버렸다. 순조로운 진보가 가능하리라 여겼던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낙관주의를 산산조각 낸 1950년대의 매카시즘과는 또 달랐다. 1970년대의 ‘저항’이 이렇다 할 열매를 맺지 못하고 스러진 뒤, 미국과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길로 접어든다. 그 속에서 대중은 물질주의와 과소비, 말초적 자극 위주의 오락에 탐닉한 나머지 더 이상 콘서트홀에서 ‘카타르시스’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클래식은 이미 소수의 취미에만 부응하는 낡은 예술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마당에 ‘미국적 오페라’를 써본댔자 누가 진지하게 들어 주겠는가? 누가 그것에서 감동을 받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겠는가? ‘시대의 총아’였던 그가 어느새 ‘시대의 박제’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 번스타인은 절망했으며, 끝내 그 절망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필생의 숙원을 이루지 못한 채, 아니 않은 채 눈을 감았다. 이렇게 보자면 그는 분명 많은 행운을 누리며 살았지만, 동시에 가장 원했던 일을 해내기에 필요한 행운은 허락받지 못했던 것 같다. …
번스타인이 겪었던 블랙리스트의 문제, 정치적 소신과 예술적 사명의 갈등, 그리고 시대와 자신과의 관계 설정 문제는 오늘날, 여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
역사가의 일은 곧 '역사법정'에서 역사와 인물을 판결하는 일이다. 위대한 역사가들이 쓴 역사책은 곧 위대한 판결문이다. 그러나 종종 역사가들은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인 어느 한쪽의 말만을 듣고는 한다. 한 시대에 떠받들어진 인물이 다음 시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폄하되거나, 역사가가 A학파냐 B학파냐, 좌냐 우냐,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기도 한다.
법정이란 흑과 백의 두 관점을 모두 취해서 보아야만 성립하는 것일진대, 그러한 편향성에는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상반되는 관점을 모두 취하는 '역사법정'을 가상으로나마 열어보기로 했다.
김유신은 민족중흥의 영웅인가, 민족정기를 훼손한 반역자인가? 신돈은 요승인가, 개혁자인가? 박정희는 수구인가, 진보인가? 책을 쓰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책에 담긴 역사의 의미는 전혀 틀려져 버린다. 물론 자기 주장을,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제시하는 책은 필요하다. 그런 주장이 공감을 얻고 지지자를 모으면서 새로운 역사해석 패러다임을 구성해 나간다. 하지만 때로는 상반되는 주장을 모두 싣고, 독자에게 판단의 여지를 남기는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왕의 투쟁, 그것은 가장 극적이며, 가장 인간적인 드라마이다. 실제의 그것은 보통의 드라마, 흔한 사극에서 보여주는 투쟁 구도보다 훨씬 복잡하고, 이중적이며, 때로는 모순적인 구도를 가진다. 그 재발견을 통하여 그 구도를 올바로 이해하고, 투쟁의 의미를 되새길 때, 우리는 옛 사람들만의 독특한 모습을, 그리고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전통교육’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부터 들까. 수염이 허연 훈장이 좌정해 있고, 그 앞에 꿇어앉은 댕기머리 아이들이 ‘하늘 천, 따 지’를 외우고 있는 장면이 머리에 스쳐갈지 모른다. 그렇다. 지금은 특별 체험이라도 신청해야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장면, ‘시대에 뒤지고’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인상이 짙게 풍기는 옛날 교육의 풍경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서 다시 들여다보자. 이 장면에는 오늘날 우리가 ‘우리 교육의 병폐’라고 여기는 문제점들이 많이 빠져 있지 않은가? ‘주입식 교육’이 아니다. 읽히고 뜻을 알려주고 뜻을 생각해 보게 하는 ‘토론식 교육’에 가까운 수업이 이루어진다. 당연하게도 교사 대 학생 비율이 높지 않으므로, 학생 하나하나를 배려하며 충실하게 교육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점수 따기 교육’이 아니다. 고전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에서 사물의 이치에 대한 자연과학적 이해까지 포괄하며, 지식 교육만이 아니라 인성 교육이 항상 함께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면 전통 교육이 오히려 오늘날의 교육보다 앞섰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오늘날에는 당시보다 훨씬 많은 분야에 대해 알아야 하고, 따라서 훨씬 많은 교과 교육이 필요하다. 국민 교육 시스템이므로 어느 정도의 일률성과 교사-학생 비율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세계가 무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마당에 인성교육이 지식교육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위주가 되는 선택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 또는 불과 몇 세대 전의 선배들이 교육받았던 방식이 마냥 후진적이거나 배울 점이 없다고만 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육이 완벽하지 못하다면, 전통적 방식을 되돌아보고 현대에 응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일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첫째, ‘전통교육은 이렇다’는 선입견 또는 대강의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체제에 따라, 무슨 성과를 거두었는가를 체계적으로 재조명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전통교육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부적절하게 적용하는 일이 없도록, 그 한계와 가능성 모두를 오늘날의 교육 환경, 정치·경제·사회·문화 환경에 비추어 검토하고 그 가운데 취할 만한 것을 취사선택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작업들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에 따라, 교육학, 한국철학, 정치학 전문 연구자들이 3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학제적 연구를 펼쳤다. 그 뜻이 지대하다고 하여 그 성과가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위와 같은 목표의식 아래 연구를 계속해 나갈 계단을 어느 정도 쌓았다고는 할 수 있다.
책의 1장에서는 전통 교육기관의 대표적 존재인 서당, 향교, 서원의 성격과 각각의 체제에 대해 상세히 분석하였다. 이들 교육기관은 서로 다른 목표와 대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향하는 교육 목표와 교육 철학은 공통적이었다.
2장에서는 1장의 내용을 이어받아, 서당, 향교, 서원에서 실제로 어떤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어떤 교육방법론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세밀히 분석하였다.
3장에서는 전통 교육과 관련해서 광범위하게 수집한 문헌들을 소개하고, 분석하였다. 서원의 학규, 학령, 원규, 강규 등등 주로 성인 교육기관인 서원에 남아 있는 규범 및 규칙 문헌들을 정리하고 분석하였다.
이상이 위에서 든 첫 번째 작업, 즉 전통교육의 실제 체제와 목표, 성과 등에 대한 재조명을 위주로 했다고 하면, 이후부터는 두 번째 작업, 즉 전통교육의 현대적 상황에서의 적용 문제를 다루는 내용이 이어진다.
4장에서는 전통교육의 의도와 효과를 정치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주제를 사도(師道)라는 개념으로 정리하는 한편, 민주주의가 기본 틀이 되고 있는 현대적 상황에서의 함의와 지향점을 모색하였다.
5장에서는 한국철학적 관점과 교육학적 관점을 동시에 적용하며, 전통교육의 콘텐츠와 방법론이 현대적 조건에서 재구성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6장에서는 다시 한 번 ‘전통교육의 바른 이해’라는 주제를 환기시켰다. 퇴계 이황의 ??언행록??에 특별히 주목하면서, 전통교육의 환경에서 모범적인 교육 대가의 ‘지식교육-인성교육’의 병행 방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천착하였다.
7장에서는 정치학적 관점에서 전통 교육의 현대화 문제를 바라보았다. 시민교육, 정치교육이라는 주제를 놓고 전통교육이 현대 한국적 환경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8장에서는 이 책의 전체 주제를 갈무리하면서, 전통 교육, 특히 유학교육의 에토스와 방법론을 현대 사회에서 유의미하게 풀이하고 응용함으로써 현대 교육에 일정하게 이바지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연구 결과는 결코 시작의 끝이 아니며, 끝의 시작도 아니다. 연구자들 개개인의 사정(가령, 그 어느 때보다 연구자들의 질환이 많이 닥쳤던 3년이었다)과 역량의 한계 등등으로, 독자 제현의 눈에 미흡한 부분도 많을 줄로 안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점은 우리가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 교육의 방향성이 재론되고 있는 시점에서, 전통의 의미와 영향력이 소멸하느냐 유지되느냐를 심각히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서, 교육학-철학-정치학의 학제적 공동연구를 통해 각자 고민하고, 토론하고, 협력하며 본 작업을 마쳤다는 점이다. 이로써 앞으로 더 나은 여건에서, 더 훌륭한 후학들에 의해 본 연구의 주제가 발전될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믿음을 담아, 부끄러움을 무릅쓰며 이 책을 독자들의 눈앞에 내놓는다.
어려운 연구와 편집 작업에서 때로 게으름을 피거나 방향성을 잃었던 연구자들을 적절히 독려해 주신 연구책임자, 서울교육대학교 지준호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지지부진한 작업을 참고 견디며 끝까지 우리 연구자들을 믿어 주신 박영사 편집진께도 감사를 드린다.
2019년 가을,
저자들을 대표하여 -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