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서야 비로소 후련해지는 세금 같은 나의 시
제가 쓴 시들은 어둠으로부터 시작해서 회색빛 세상을 지나 희망과 미래가 있는 밝음과 기쁨으로 가는 여정, 그 어디쯤에 서성이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기억을 못합니다.
사고로 인하여 의식을 놓아버리고 언어를 잃어버린 저는 병원에서 언어를 다시 익혔습니다. 아마 94년 초순일 거예요. 서울의 어느 정형외과 병원 입원 당시 물리치료 실습생에게 전 꽃그림을 선물했었고, 실습 마지막 날 그 실습생은 제게 류시화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한 권을 선물해주었습니다. 그 후 제 삶에서 시는 소중한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 시인처럼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에 처음 펜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한 편씩 시를 썼었죠.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시가 제 삶에 들어온 것이…
처음엔 그저 제 삶을 기록하는 것이라 여기며 순간 순간에 집중했었고, 1시간 남짓의 시를 쓰는 시간은 제 하루의 루틴처럼 취침 전 삶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행복에 절여진 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를 쓰지 못한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하여 1년에 대략 90~100일 정도는 못 잤었고, 그런 날이면 일상이 꼬이기 십상이었습니다. 낮 밤이 뒤바뀐…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시가 세금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루를 편안히 살아온 것에 대한 나 자신에게 세상이 청구한 세금. 설령 내지 않는다고 어느 누구도 강제 징수하지 않지만 내고나서야 후련해지는, 오늘 하루 평안히 살아온 내 삶의 대한 세금.
남들보다 뒤늦게 고등학교와 지방 전문대를 졸업한 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 중 휴게실에 비치한 “문학바탕”을 접하고, 몇 번의 고배를 마시다가, 2016년 6월호에 “화분으로 성숙해지다” 외 4편으로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함에도 저의 재능을 인정해주시고 등단이라는 기회를 주셨으며 제 작품에 의구심이 생길 때마다 격려해주시는 문학바탕 곽혜란 발행인님과의 인연은 이렇게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을 내는 데 도움 주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서툴고 실수하더라도 이 아들을 믿고 응원해주신 아버님께 이 자리를 빌려 평소 못 드린 말, 사랑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 영전에 이 시집을 바칩니다.
앞으로 제 삶이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제 시를 보고 “어둠 속에서 아련한 빛으로 희망과 기쁨, 밝은 쪽으로의 방향을 노래했음”이라고 말해준 어느 블로거의 말처럼 “밝은 쪽으로의 노래”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2024년 10월 20일
김진년